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6. 12. 09:52


스프링캠프란 프로 야구ㆍ프로 축구 따위에서, 봄의 정규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 집중적으로 가지는 합숙 훈련. 또는 합숙 훈련을 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아직 인생의 서막이 다 올라가지 않은 소년, 소녀의 합숙과 같은 여행길을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는 1986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다섯인 준호는 절친한 친구 규환이와 엄마의 재혼으로 상실감, 아빠에 대한 그리움 그 시기에 흔히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들로 시간을 보낸다.  엄마의 재혼으로 규환이와 더 있고싶었던 준호는 친구의 또 다른 일정에 배신감마저들고, 그 일정이 학생운동하는 그의 형 주환의 도피를 돕기 위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저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규환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규환의 부탁으로 준호가 대신 그의 형 도피를 돕기위해 여정을 떠난다.

양조장 장씨의 도움으로 무안까지 가야하는 상황.  준호는 양조장 트럭에 몰래 잠입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양조장 아들 승조가 있었고 개장수의 딸 정아, 그리고 정체모를 할아버지 그것도 모자라 루즈벨트라 불리우는 사나운 검둥개까지.  그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날지...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열다섯 소년소녀의 투닥거림과 그 베짱 허세도 귀여웠지만 학생운동을 하는 주환이의 도피라는 목적 달성이 될지 제일 걱정 되었다.  할아버지는 조금만 가면 된다된다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어보이고 승조는 승조대로 준호의 가방이며 돈이며 다 빼앗고 준호는 덩치큰 승조에게 덤비고 본전도 못찾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속으로는 얼씨구하며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다섯 먹은 소년의 말도안되는 힘겨루기만 있었다면 이 소설이 5000만원의 고료를 받는 작품이 되었을까.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 할아버지는 준호네 동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병자였고, 그 역시 평범한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개장수 딸 정아도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 그 아버지로 인해 다리가 불구가 된 어머니.  이미 폭력에 길들여지는 어머니에게서 도망친 언니 이야기.  언니에게 당장 가고싶지만 홀로 남겨질 엄마 걱정하는 정아의 가정사.  양조장 5대독자 승조의 힘든 인생살이.  그 안에서 모두 다 가슴속에 사연하나씩은 있었다.  

할아버지가 정신병원에 가게 된 인생 이야기는 그 시대상과 겹치며 가슴을 후벼팠다.  월규라고 이름까지 지어준 어느날 갑자기 얻게 된 딸.  그 딸의 불치병.  그러다 광주에서 총에 맞고 사망한 이야기와 젊었을때 고래잡이였다는 이야기가 겹치며, 환상적인 묘미까지 더해졌다.

결국은?

준호는 무사히 주환의 도피를 도울 수 있었다.  물론 그 도피가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배를 타고 무사히 빠져나갔고 그 후 할아버지가 규환이네 집에 전화해서 무사하다고 알려준 그 대목은 가슴이 찡했다.  그것이 그 할아버지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에 몽유병환자라곤 하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알고 두려워하지 않은 진정한 바다인이라고 느껴졌던 대목이다.


소년, 소녀들은 그렇게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본진으로 각자 흩어진다.  그것이 내가 원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준호의 바람대로 정아는 잘 살고 있을것이며, 승조는 세종기지에서 연구를 하며 지낼것이다.  그리고 준호의 소설이 발간이 되어 그에게 남겨진 여동생의 소원대로 톨킨의 라이벌이 되길 바란다. 



내 인생에도 스프링캠프가 있었다면 그게 언제였을까.  내가 이 세상 온전히 나의 두발로 딛기 전 그 시간이 모두 스프링캠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지금일까.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겪고 있는 실전들은 나의 과거 스프링캠프에서 겪은 연습들의 결과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하며 이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