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7. 13. 01:47

 

한 미술복원가에게 독특한 의뢰가 들어온다.  그것은 30년정도 된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 운동화는 두짝다 있는것이 아니고 오른쪽은 분실, 현재는 왼쪽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렇다고 상태가 굉장히 좋은것도 아니고 환자로 치자면 사망선고 바로 직전의 상태였던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고가의 미술품만 복원을 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들만 복원하는것은 아니다.   죽은 아내가 생전에 그린 풍경화도 복원을 해보고 그의 복원엔 가격, 의로비, 예술적 가치 이런걸 떠나서 그의 손길이 닿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면 복원작업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운동화는 분명히 그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그는 운동화 복원에 많은 갈들을 한다.

그 이유는 그 운동화는 평범한 운동화라기보다 87년 6월의 항쟁의 불꽃이 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였다.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서 죽어가던 그 운동화가 그의 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수없이 갈들을 한다.  하지만 그 갈등조차 복원을 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안된다는것을 잘 안다.  운동화는 운동화일 뿐 L을 넘어서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복원의 정답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결국 그는 복원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미술복원가가 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이한열열사의 운동화를 복원의뢰를 받으며 시작한다.  그렇다고 87년도 민주항쟁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은 아니다.  말 그대로 미술복원가의 이야기와 운동화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다.  누구나 다 신발을 신고다니는 요즘, 신발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나의 발길 닿는 곳 모두 함께한 이 신발은 나의 삶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L의 운동화는 단순히 그냥 운동화가 아니다.  하지만 L을 넘어설수는 없다. 


그의 이야기속에는 운동화 이야기 뿐 아니라 자폐아를 키우는 선배복원가의 이야기, 미인도를 복원하느라 가정에 소흘했던 다른 선배의 이야기,  돌아와보니 이미 아내는 말기신부전증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미술품의 복원은 성공적이었으나 가정의 복원은 아직 제자리 걸음이라는 이야기.  이런 주변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져 미술 복원의 이야기와 민주항쟁의 만남이 소설이 되어 새로이 탄생했다.

책을 읽다보면,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가 나온다.  한분한분 돌아가시고 나면 마지막 한 분만 남았을때 그때, 그 당시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김숨의 또 다른 소설 '한 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살포시 짐작해본다.


차분하게 생각하며 읽기 좋았다.  더위가 시작되는 6월에 일어난 민주항쟁을 더운 이 날씨에 읽으니 그때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 이한열 열사의 다른짝 운동화는 집회 후 분실물로 나왔으나 주인을 찾지못했다는 짧은 에피소드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왼쪽만 남은 그의 운동화가 더 그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것을 잘 설명해주는것 같다고 느꼈다.


그 어떤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때는, 그것이 죽어 갈 때가 아닐까.  희미해져 갈때, 변질되어 갈 때, 파괴되어 갈 때, 소멸되어 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