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추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4.29 비하인드 도어.
  2. 2017.06.12 정유정 - 스프링캠프
  3. 2017.05.17 2017년 첫번째 감상문 - 캐비닛 김언수 장편소설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8. 4. 29. 07:00

페이스북 '책 끝을 접다'라는 페이지에서 보고 구매한 책이다.  사실 우리집에 있는 많은 소설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하는 페이지다.  보면 재미있는 책도 많고 사실 그 페이지에서 소개한 내용이 전부인 책도 있다.  이 책은 그 페이지에서 소개한 내용외에도 결말까지 너무 재미있었다.

 

그레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다정하고 잘생기고 심지어 이름도 '잭 엔젤' 얼마나 멋진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그레이스.  게다가 그레이스 역시 완벽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그 부부의 모습은 완벽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일 뿐.  그레이스와 잭의 사이는 사실 인질과 인질범의 모습이다.  손님들이 가고나면 잭은 그레이스를 샤워실이 딸린 작은 방으로 가둬두고 음식도 주고싶을때 주며 모든 행동에 제약을 둔다.  잭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는 공포의 냄새를 맡고 그걸로 쾌감을 얻는 사이코패스이다.  그레이스가 잭의 곁에서 더 두려운 것은 잭의 목적이 그레이스가 아니라 그의 동생 밀리라는 것이다.

다운증후군의 밀리는 지금 학교기숙사에서 살지만 학기가 끝나면 집으로 데리고와 함께 살기로 한것.  그래서 그레이스는 최대한 밀리가 오기전에 이 상황을 정리하려한다.  그레이스와 잭이 펼치는 심리전이 책을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긴장을 더해줬다. 

 

결말이 갑작스레 정리되는 감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그레이스에게는 가장 최선의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아쉬운건 그레이스와 잭의 사이를 조금 의아하게 바라봤던 에스더의 분량이다.  조금은 더 나올꺼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종료되어가는 시점에서 조금 나타난것이 아쉽긴 했다.

 

그래도 단숨에 읽었던 책이었고 이 책 이후에 두권의 책을 더 읽고 있지만 가끔 그레이스의 감금생활이나 이런것들이 종종 생각난다.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6. 12. 09:52


스프링캠프란 프로 야구ㆍ프로 축구 따위에서, 봄의 정규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 집중적으로 가지는 합숙 훈련. 또는 합숙 훈련을 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아직 인생의 서막이 다 올라가지 않은 소년, 소녀의 합숙과 같은 여행길을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는 1986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다섯인 준호는 절친한 친구 규환이와 엄마의 재혼으로 상실감, 아빠에 대한 그리움 그 시기에 흔히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들로 시간을 보낸다.  엄마의 재혼으로 규환이와 더 있고싶었던 준호는 친구의 또 다른 일정에 배신감마저들고, 그 일정이 학생운동하는 그의 형 주환의 도피를 돕기 위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저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규환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규환의 부탁으로 준호가 대신 그의 형 도피를 돕기위해 여정을 떠난다.

양조장 장씨의 도움으로 무안까지 가야하는 상황.  준호는 양조장 트럭에 몰래 잠입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양조장 아들 승조가 있었고 개장수의 딸 정아, 그리고 정체모를 할아버지 그것도 모자라 루즈벨트라 불리우는 사나운 검둥개까지.  그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날지...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열다섯 소년소녀의 투닥거림과 그 베짱 허세도 귀여웠지만 학생운동을 하는 주환이의 도피라는 목적 달성이 될지 제일 걱정 되었다.  할아버지는 조금만 가면 된다된다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어보이고 승조는 승조대로 준호의 가방이며 돈이며 다 빼앗고 준호는 덩치큰 승조에게 덤비고 본전도 못찾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속으로는 얼씨구하며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다섯 먹은 소년의 말도안되는 힘겨루기만 있었다면 이 소설이 5000만원의 고료를 받는 작품이 되었을까.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 할아버지는 준호네 동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병자였고, 그 역시 평범한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개장수 딸 정아도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 그 아버지로 인해 다리가 불구가 된 어머니.  이미 폭력에 길들여지는 어머니에게서 도망친 언니 이야기.  언니에게 당장 가고싶지만 홀로 남겨질 엄마 걱정하는 정아의 가정사.  양조장 5대독자 승조의 힘든 인생살이.  그 안에서 모두 다 가슴속에 사연하나씩은 있었다.  

할아버지가 정신병원에 가게 된 인생 이야기는 그 시대상과 겹치며 가슴을 후벼팠다.  월규라고 이름까지 지어준 어느날 갑자기 얻게 된 딸.  그 딸의 불치병.  그러다 광주에서 총에 맞고 사망한 이야기와 젊었을때 고래잡이였다는 이야기가 겹치며, 환상적인 묘미까지 더해졌다.

결국은?

준호는 무사히 주환의 도피를 도울 수 있었다.  물론 그 도피가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배를 타고 무사히 빠져나갔고 그 후 할아버지가 규환이네 집에 전화해서 무사하다고 알려준 그 대목은 가슴이 찡했다.  그것이 그 할아버지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에 몽유병환자라곤 하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알고 두려워하지 않은 진정한 바다인이라고 느껴졌던 대목이다.


소년, 소녀들은 그렇게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본진으로 각자 흩어진다.  그것이 내가 원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준호의 바람대로 정아는 잘 살고 있을것이며, 승조는 세종기지에서 연구를 하며 지낼것이다.  그리고 준호의 소설이 발간이 되어 그에게 남겨진 여동생의 소원대로 톨킨의 라이벌이 되길 바란다. 



내 인생에도 스프링캠프가 있었다면 그게 언제였을까.  내가 이 세상 온전히 나의 두발로 딛기 전 그 시간이 모두 스프링캠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지금일까.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겪고 있는 실전들은 나의 과거 스프링캠프에서 겪은 연습들의 결과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하며 이 책을 덮는다.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5. 17. 03:59



캐비닛의 사전적인 정의는 사무용 서류나 물품 따위를 넣어 보관하는 장이라고 한다. 소설 제목처럼 무언갈 보관하고 있는 캐비닛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표지만 보면 굉장히 유쾌한 사연들만 있을것 같다.

100번넘게 낙방하고 힘겹게 들어간 공기업 연구소에서 하릴없이 월급만 타는 생활을 하다가 문득 '13호의 캐비닛'을 발견한다.  거기에 나온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는 권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심토머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또 다른 인간의 형태를 의미하는 듯 하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고양이가 되고싶은 사람, 마법사라고 하는 사람, 외계인과 전파교류하는 사람, 몇년간 잠을 자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의 해괴하기도하고 어이없기도 한 심토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여러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은 궁지에 몰린 인간이 방어기제로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심토머들을 실제로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즐겁기도하고 그들 사연과 이야기들이 때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특히 고양이 외에 다른 것에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   그래서 꼭 고양이로 변신해야만 하는 그의 사연이나 연구소의 손정은의 직장내에서의 모습은 읽을때 가슴 속에 무언가 묵직함을 느끼게 했다.

오랜만에 읽었던 한국소설이었고 즐거웠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느 날 삶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와서 정면으로 우리를 노려볼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않건 간에 이질적이고 이종적인 것들은 우리 곁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가 세계라는 복잡한 플라스크 용기 속에서 그들과 함께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연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폐허를 가질 용기도, 무책임을 가질 용기도 없어서 우리는 항상 피곤하고 지쳐 있는데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