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9. 1. 22. 12:02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계나의 이야기.
단순히 너 싫어하는 의미보다 이 땅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지분이 없어서 떠난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그에게는 안정된 연인이 있었지만 가족과 연인을 모두 두고 호주로 떠난다. 계나가 겪는 호주의 일상 이야기들이 생생하다. 문체가 대화체 그리고 계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일기같은 느낌이 강하다. 결국 계나는 호주 시민권을 따고 그곳에 정착한다.
계나가 한국이 아닌 호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늘 가난했던 가정, 나의 노력만으로는 힘든 취업시장, 그리고 겨울만되면 견딜 수 없는 추위. 이런것들을 뒤로한채 호주로 간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 예전 직장생활같이 하던 선배가 어느날 피렌체의 한 가죽공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 선배의 이탈리아 생활도 계나같았겠구나싶었다.
“표백”을 읽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접했지만, 조금은 아쉽다. 여성을 화자로 두었지만 능동적인 모습보다 삶 중간중간에 개입을 하는 남성의 모습으로 인해 계나의 용기가 퇴색된 느낌이다. 전반적인 모습은 자기 삶을 개척하고 이끄는 모습이었지만 굳이 그렇게 많은 연애사들을 열거했어야하나 싶다.
그래도 작가가 말하는 한국사회에서 젊은층이 느끼는 바를 표현했다고 본다.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9. 1. 22. 08:42

 

 

표백세대라는 말로 요즘의 2030세대를 부른다. 절망의 색이 시커먼 먹구름이 아니라 더이상 더할것도 없는 흰색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붙여준 세대이름.
'자살'이라는 소재로 쓴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김영하의 소설에서는 자살을 설계하고 도와주는 S가 다른 사람의 자살을 쉽게 도와주지만, 여기서는 젊은이들을 자살로 이끄는 존재는 이미 먼저 자살을 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세연'이라는 대학생이 사망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5년후에 그의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자살을 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완제품속에서 그저 하나의 부품으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의 마지막 발악이다.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작품속에서도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며 경제적 곤란에 허덕이는 모습,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모습들은 지금의 대학생의 모습을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열정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사회적인 장치가 그들에게는 야박하게 만들어졌는데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건지 곱씹어보게했다.
누구나 다 이 책 내용에 대해 공감을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느끼는 문제의식이 문학과 잘 어우러져 신선한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책도 이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8. 10. 26. 17:39

 

 

최근들어 한국 단편소설 중 추천이 많은 책이다.  내가 종종 가는 커뮤에서도 소설이야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작가.  또 최근에 신작출간도해서 그런지 더욱 많이 들려오는 이름과 책.

 

총 7편의 중단편으로 묶여있다.  유독 조부모님이 많이 등장한다.(찾아보니 작가가 의도한건 아니라고한다,) 

 

이 책의 첫 작품으로 등장하는건 역시 책 제목인 <쇼코의 미소>다. 

한국으로 교환학생온 쇼코와의 이야기.  거기에 할아버지까지 나오면서 내 감정에 뼈를 때리는 기분이다.  학창시절 쇼코는 늘 밝고 활기차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일본으로 찾아간 쇼코는 보잘것 없는 그런 사람이었고 다시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간단한 이야기지만 쇼코와 할아버지의 관계도 그렇고 주인공의 이야기도 그렇고 특별한 이야기의 진전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타인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듯 나 역시 전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변하고 바뀌고 무언가를 향해 나가지만 결국 혼자남는다.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외에

독일에서의 투이네 가족과의 이야기를 다룬 <신짜오신짜오>, 누군가를 위로해준다는게 어떤건지 그 위로가 남겨진 쓸쓸함이나 박탈감을 그린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그리고 봉사활동하는 수도원에서 만난 젊은 청춘 이야기 <한지와 영주>

러시아로 날아가 선배의 흔적을 찾으며 함께 했던 노래를 회상하는 <먼 곳에서 온 노래>

교황을 보러 상경한 엄마와 딸 미카엘라 이야기.  그 속에 있는 세월호 이야기 <미카엘라>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가 중국으로 훌쩍 떠난 손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비밀>

 

 

책 뒷편 심사평에도 나와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신선했던 점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라는것이다.  <한지와 영주>에서 한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여성이고 <쇼코의 미소>에서도 나온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이라기보단 쇼코와 주인공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이 회자가 되는게 아닐까싶다.

 

나는 앞으로 이런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책 뿐 아니라 드라마도 예능도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자가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바람이 작가의 바람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의 바람일것이다.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8. 5. 4. 22:53

 

 

주변 젊은층의 사람들에게 많은 호감을 얻는 작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황정은'작가에 대해 기대도 많았고 그 작가의 책 역시 많이 추천을 했다.  이 전 읽었던 책이 '정이현'의 책이라 그 여운이 길게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른 책이다.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소라, 나나, 나기정도? 각자 한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하며 소설은 진행이 된다.  소라의 이야기 나나의 이야기 나기의 이야기...

소라와 나나는 자매이고 둘의 엄마는 애자.  엄마를 애자라고 칭하며 이야기를 한다.  애자가 전력을 다해 사랑한 남자 금주씨.  금주씨는 나나와 소라를 두고 불행한 사고로 죽음을 맞게된다.  그 이야기는 애자에게 자주 듣지만 소라와 나나는 동화이야기 듣듯 금주씨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듣는다.  애자에게 금주씨가 사랑이었고 그건 애자의 사랑이었다.  소라의 사랑은 소라의 모양대로 나나의 사랑은 나나의 형태대로... 나기의 사랑은 나기의 방식대로 진행된다. 

각자 인생을 살아간다.  사랑도 이어간다.  사랑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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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7. 18. 09:30





이 책은 여성문제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제목만큼은 들어봤을 책이다.  물론 페미니즘 관련해서 입문서로 적당한 책들도 많지만 이 책은 한국작가의 책이고 무엇보다 소설이라는 것.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주인공은 제목처럼 82년에 태어난 김지영씨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일생일대기를 그린 책이라고봐도 무방하다.  그녀는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어렸을때 밥상에 맛있는 반찬은 아버지와 남동생 차지였고 그 이후에 갖은 나물이나 김치는 김지영씨와 언니의 몫이었다.  그냥 그녀는 그것이 빈정상하고 때로는 속상한 일이었을지언정 크게 문제될 것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온다.  그랬던 그녀가 점점 성장을 해오고 초경을하게 되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며 맞닥뜨리는 현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배제된다는 것이다.  여자라서 굴지의 대기업에 교수의 추천을 받지 못하는 현실.  여자라서 기획팀에 뽑히지 못했던 현실.
결혼후에는 여러 일가친척으로부터 2세문제에 대한 지적질.  임신후에는 그렇게 어렵게 취직했던 그 직장마저도 그만두어야하는 현실.  이런현실들이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을 보고 있는 듯해 답답했다.  

우리나라엔 수많은 김지영씨가 있다.  누구하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막연히 그 고통과 수고스러움은 모성애라는 이유로 감내해야하는것이 되어버렸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그 주체가 여성이 아니라 뱃속에 아이로 보는 시선이 당연시 되어왔고 다만 여성은 아이를 낳는 하나의 도구로 여겨지는 것이 흔한 일이다.  또한 임신을 하면서 수많은 신체변화, 불편함은 12년의 교육과정에서 배우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육아와 가사는 온전히 여자의 몫으로 남겨두었고, 그로인해 직장내에서는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니깐... 이라는 말로 모든 여성을 다 매도하고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슬펐다.  책에 나온 김지영씨가 나의 모습같았다.  김지영씨가 딸 지원이를 낳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려고 아이스크림가게에 갔을때 거기서 일하고있던 분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에요!"
라고 외쳤던 그 말이 ....
남자가 대학까지 나와서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있나싶다.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겪었을, 들었을 이야기다.  여성문제, 페미니즘의 관심이 없더라도 그냥 글자를 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나라에서 여자가 이렇게 살고있다고 그러니 더치페이니 김치녀니 여성상위시대라는 헛소리는 잠시 넣어두시라고........

결정적인 순간이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시선을 가리고, 뻗은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돌려 놓았다.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곳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을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7. 13. 01:47

 

한 미술복원가에게 독특한 의뢰가 들어온다.  그것은 30년정도 된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 운동화는 두짝다 있는것이 아니고 오른쪽은 분실, 현재는 왼쪽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렇다고 상태가 굉장히 좋은것도 아니고 환자로 치자면 사망선고 바로 직전의 상태였던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고가의 미술품만 복원을 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들만 복원하는것은 아니다.   죽은 아내가 생전에 그린 풍경화도 복원을 해보고 그의 복원엔 가격, 의로비, 예술적 가치 이런걸 떠나서 그의 손길이 닿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면 복원작업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운동화는 분명히 그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그는 운동화 복원에 많은 갈들을 한다.

그 이유는 그 운동화는 평범한 운동화라기보다 87년 6월의 항쟁의 불꽃이 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였다.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서 죽어가던 그 운동화가 그의 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수없이 갈들을 한다.  하지만 그 갈등조차 복원을 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안된다는것을 잘 안다.  운동화는 운동화일 뿐 L을 넘어서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복원의 정답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결국 그는 복원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미술복원가가 민주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이한열열사의 운동화를 복원의뢰를 받으며 시작한다.  그렇다고 87년도 민주항쟁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은 아니다.  말 그대로 미술복원가의 이야기와 운동화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다.  누구나 다 신발을 신고다니는 요즘, 신발이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나의 발길 닿는 곳 모두 함께한 이 신발은 나의 삶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L의 운동화는 단순히 그냥 운동화가 아니다.  하지만 L을 넘어설수는 없다. 


그의 이야기속에는 운동화 이야기 뿐 아니라 자폐아를 키우는 선배복원가의 이야기, 미인도를 복원하느라 가정에 소흘했던 다른 선배의 이야기,  돌아와보니 이미 아내는 말기신부전증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미술품의 복원은 성공적이었으나 가정의 복원은 아직 제자리 걸음이라는 이야기.  이런 주변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져 미술 복원의 이야기와 민주항쟁의 만남이 소설이 되어 새로이 탄생했다.

책을 읽다보면,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가 나온다.  한분한분 돌아가시고 나면 마지막 한 분만 남았을때 그때, 그 당시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김숨의 또 다른 소설 '한 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살포시 짐작해본다.


차분하게 생각하며 읽기 좋았다.  더위가 시작되는 6월에 일어난 민주항쟁을 더운 이 날씨에 읽으니 그때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 이한열 열사의 다른짝 운동화는 집회 후 분실물로 나왔으나 주인을 찾지못했다는 짧은 에피소드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왼쪽만 남은 그의 운동화가 더 그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것을 잘 설명해주는것 같다고 느꼈다.


그 어떤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때는, 그것이 죽어 갈 때가 아닐까.  희미해져 갈때, 변질되어 갈 때, 파괴되어 갈 때, 소멸되어 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