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날아라곰순이 2017. 5. 17. 03:59



캐비닛의 사전적인 정의는 사무용 서류나 물품 따위를 넣어 보관하는 장이라고 한다. 소설 제목처럼 무언갈 보관하고 있는 캐비닛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표지만 보면 굉장히 유쾌한 사연들만 있을것 같다.

100번넘게 낙방하고 힘겹게 들어간 공기업 연구소에서 하릴없이 월급만 타는 생활을 하다가 문득 '13호의 캐비닛'을 발견한다.  거기에 나온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는 권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심토머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또 다른 인간의 형태를 의미하는 듯 하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고양이가 되고싶은 사람, 마법사라고 하는 사람, 외계인과 전파교류하는 사람, 몇년간 잠을 자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의 해괴하기도하고 어이없기도 한 심토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여러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은 궁지에 몰린 인간이 방어기제로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나는 심토머들을 실제로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즐겁기도하고 그들 사연과 이야기들이 때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특히 고양이 외에 다른 것에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   그래서 꼭 고양이로 변신해야만 하는 그의 사연이나 연구소의 손정은의 직장내에서의 모습은 읽을때 가슴 속에 무언가 묵직함을 느끼게 했다.

오랜만에 읽었던 한국소설이었고 즐거웠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느 날 삶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와서 정면으로 우리를 노려볼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않건 간에 이질적이고 이종적인 것들은 우리 곁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가 세계라는 복잡한 플라스크 용기 속에서 그들과 함께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연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폐허를 가질 용기도, 무책임을 가질 용기도 없어서 우리는 항상 피곤하고 지쳐 있는데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